앙코르 쁘라삿 끄라반
쁘라삿 끄라반

쁘라삿 끄라반 (Prasat Kravan)

쁘라삿 끄라반은 거대한 사원도 아니고, 부조가 수없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다른 앙코르 유적지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점들이 있어서 유적 매니아들이 종종 찾는다. 쁘라삿 끄라반은 하나의 기단 위에 5개의 벽돌 탑들을 일렬로 세웠다. 앙코르 유적 대부분이 파괴의 신인 시바 신을 위한 사원인 것과 달리 쁘라삿 끄라반은 유지의 신인 비슈누 신을 위한 사원이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최초로 비슈누 신을 위해서 만든 사원이다. 그래서 부조도 대부분 비슈누 관련 신화이다. 앙코르 초기 유적지로 벽돌 자체에 부조를 새긴 점이 특별하고, 탑 내부 3면을 돌아가면서 부조를 가득 매운 것도 다른 사원에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이다.

앙코르 유적의 수 많은 작은 사원들 중에서도 볼 만한 가치가 높고, 20분 정도면 관람이 가능하므로, 시간을 내서 방문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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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앙코르 공통권 : 37US$(1일권) / 62US$(3일권), 72US$(7일권). 유적지마다 입장권을 검사한다

[관람 시간] 새벽~저녁 / 매표소 운영시간 05:00~17:30

[닫는 날] 없음

[가는 방법]

뚝뚝 : 12~15US$정도(1일)

택시 : 23~25US$정도(1일)

자전거 : 1~2US$정도(1일)

그럼 쁘라삿 끄라반을 언제 방문하는 것이 좋을까? 쁘라삿 끄라반 사원의 외관은 전체적인 건축 양식과 벽돌 부조 등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된다. 그러나 탑 내부의 부조는 자세히 살펴 보는 것이 좋다. 탑의 문들이 동쪽으로 나 있으므로 탑 내부에 햇빛이 들어오는 아침 시간대가 관람하기에 가장 좋다. 새벽에 앙코르 와트 일출을 보고, 따 프롬으로 이동시 보거나, 반띠아이 쓰레이로 가는 길목에 있으므로 아침 이른 시간에 반띠아이 쓰레이로 가기 전에 방문한다.

쁘라삿은 탑이라는 뜻이다. 끄라반에 대해서는 끄라완(Cardamom, 카르다몸)이라는 생강과의 열대 향신료를 뜻한다는 견해가 있다. 쁘라삿 끄라반 발견 당시 주위에 카르다몸 나무 열매가 있었다는 견해도 있고, 사원이 작지만 사랑스러운 것이 카르다몸 이미지와 같아서 그와 같은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1930년대에 앙리 마르셀(Henri Marchal)이 수풀 더미에서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훼손 정도가 매우 심하였지만, 프랑스 극동 연구소의 연구팀이 1962~1966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최근에도 일부는 계속 복원 작업 중이다.

921년 하르샤 바르만 1세(Harshavarman I, 910∼923년) 시대에 왕이 아닌 귀족이 만든 사원이다. 하르샤 바르만 1세는 야소 바르만 1세의 아들로 정통적으로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야망을 가진 그의 숙부(자야 바르만 4세)와 왕권 전쟁을 하게된다. 921년 자야 바르만 4세(928∼944년)가 꼬 께르(Koh Ker)에서 새 왕국을 건설함으로써 크메르 왕국은 남북조 왕조로 분열되었다. 이후 북쪽 왕조의 라젠드라 바르만 2세(944∼968년)가 북쪽 왕조인 꼬 께르와 남쪽 왕조인 야소다라푸라 다시 통일한다. 라젠드라 바르만 2세 때에 앙코르 유적 중에서 왕이 아닌 귀족이 만든 사원으로서는 가장 유명한 반띠아이 쓰레이(967년)가 완공된다.

쁘라삿 끄라반 근처 지도

쁘라삿 끄라반 주변 지도. 쓰라 쓰랑에서 쁘라삿 끄라반까지는 약 1.3km이다. | 앙코르 와트 동쪽 출입구에서는 약 2.9km 정도 동쪽으로 가야 한다.

쁘라삿 끄라반 입구

쁘라삿 끄라반 입구. 쓰라 쓰랑에서 앙코르 와트로 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이다. 특별한 입구 표지가 없으므로, 가는 길 왼쪽(동쪽)에 쁘라삿 끄라반 앞 가게가 있는지 주의해서 살펴본다. 쁘라삿 끄라반 사원이 길에서 150m정도 떨어져 있고, 규모도 작아서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쁘라삿 끄라반 지도

쁘라삿 끄라반 지도. 탑 5개가 남북으로 줄지어 세워졌다. 입구는 동쪽이다. 규모는 작지만, 사원 건축에 충실하게 해자가 사원을 둘러싸고 있다.

쁘라삿 끄라반 입구

쁘라삿 끄라반 주차장에 내려서 150m 정도 동쪽으로 걸어서 들어가면, 중앙 성소 서쪽(뒷쪽)이 보인다.

쁘라삿 끄라반 입구

힌두 사원은 보통 중앙에 메루산을 상징하는 중앙 성소를 세우고, 사각형 네 모서리에 대륙을 상징하는 탑을 세운다. 그런데 쁘라삿 끄라반은 특이하게 하나의 기단(laterite) 위에 중앙에 중앙 성소탑을 세우고, 좌우 남북으로 2개씩, 총 5개의 탑을 일렬로 만들었다.

쁘라삿 끄라반 입구

탑 내부의 부조를 보면 상당히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외부의 탑들은 새 벽돌로 복원하여 최근에 건축한 것처럼 깨끗한 느낌이다. 복원에 사용된 새 벽돌에는 CA(Conservation of Angkor)라는 표식을 해 놓았다.

쁘라삿 끄라반 동쪽 출입구

쁘라삿 끄라반 동쪽 출입구(앞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십자형의 참배로가 있다. 그 뒤로 일자로 탑들을 세웠다. 모든 탑들이 동쪽을 보고 출입문을 만들었다. 탑들은 층층히 위로 올라갈수록 차츰 줄어들도록 건축하였다.

쁘라삿 끄라반 사자상

각 탑 앞으로 계단 양쪽에 사자상이 쌍으로 서있다.

쁘라삿 끄라반 중앙 성소

쁘라삿 끄라반 수문장

중앙 성소탑 동쪽 출입문 양쪽으로 수문장(드바라팔라, Dvarapala)을 조각하였다. 먼저 벽돌 위에 부조를 새긴 후 벽토를 바르고, 그 위에 채색을 하였다고 한다. 모르타르 대신에 식물성 혼합물을 사용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문 위의 린텔과 8각형의 붙임 기둥은 사암으로 만들었다.

벽돌 위에 부조를 새기는 방식은 크메르 건축 양식을 구분하는 시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양식은 베트남 중부의 참족 사원에는 많이 보이는 양식이나, 크메르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박세이 참크롱 중앙 성소 여신상의 경우에도 벽돌 위에 부조를 새겼다. 쁘라삿 끄라반은 921년에 완공되었고, 박세이 참크롱은 948년에 재복원되었다.

쁘라삿 끄라반 비문

중앙 성소탑의 린텔이다.

쁘라삿 끄라반 비문

중앙 성소탑 문틀에 비문이 새겨져 있다. 921년에 쁘라삿 끄라반 중앙 성소 탑 내부에 비슈누 조각을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하늘로 뻥 뚫린 공간이 나온다.

비슈누와 추종자들

중앙 성소의 동쪽 출입문을 제외한 3면에 비슈누 신의 부조가 있다. 문을 들어가서 정면(서쪽)을 바라보면 벽돌 위에 팔 여덟 개가 달린 비슈누 신이 서 있다. 그리고 비슈누 신 양 옆으로 6단에 걸쳐 그의 추종자들이 좌우 일렬로 줄 맞추어 부조되어 있다. 비슈누 신 밑에는 악어가 새겨져 있다.

바나마와 세 걸음

중앙 성소의 왼쪽(남쪽) 부조에는 4개의 팔이 달린 비슈누 신이 그의 상징물을 들고 있다. 비슈신의 5번째 화신인 바나마(Vamana)가 비슈누 신이 되어 법륜, 소라, 곤봉, 공을 들고 큰 걸음을 떼려는 듯 한 발을 기단 위에 올려 놓고 있다. 바마나 밑의 세 개의 물결 표시는 대양을 건너는 모습을 상징화하였다.

악마 왕 마하발리는 고행을 통해 신들을 능가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그는 곧 인드라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에 복수하기 위해 인드라가 지배하던 도시를 빼앗고, 선신들을 내쫓는다. 이에 신들의 신 인드라가 비슈누 신에게 마하발리를 제압하고 세상을 바로 잡아주기를 부탁하자, 비슈누는 인드라의 난쟁이 동생(바마나)으로 태어난다. 비슈누는 난쟁이의 모습으로 악마 마하발리에게 찾아가 자신이 세 발걸음으로 잴 수 있는 만큼의 땅을 달라고 부탁한다. 악마 마하발리는 스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쟁이라는 점에 코웃음을 치며 이를 수락해버린다. 난쟁이 바마나는 비슈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첫 걸음에는 땅을, 두 걸음에는 하늘을, 세 걸음 째에는 마하발리의 머리를 밟아 마하발리를 지하 세계에 가둔다. 비슈누는 바마나 이야기를 통해 두 번째 발걸음에도 이미, 마지막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세상은 넓고 위대하는 것을 깨우쳐준다.

가루다와 비슈누

오른쪽(북쪽) 부조에는 가루다를 타고 있는 비슈누 신을 부조하였다.

비슈누의 왼쪽 위의 손에는 소라(법랍패)가 들려있다. 비슈누가 바다 속 악마를 잡았더니 작은 소라 형태로 변했다고 한다. 비슈누가 소라를 불면 신들은 용기가 솟아났고 악신들은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왼쪽 아래 손은 곤봉을 들고 있다. 곤봉은 비슈누가 세상의 다르마를 가르칠 때 사용한다고 한다. 오른쪽 위에 손에는 원반(법랍)을 들고 있는데, 악신을 처단할 때 원반을 던져서 무기로 사용한다. 오른쪽 아래 손에는 생명을 상징하는 연꽃을 들고 있다.

가루다(Garuda)는 독수리의 얼굴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니는 상상의 동물이다. 앙코르 유적에서는 비슈누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가 가루다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루다 다리쪽과 팔쪽을 보면 날개가 빗금으로 새겨져 있다. 가루다는 주로 서있는 자세나 하늘을 날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위로 벌리고 있다.

가루다는 우유 바다의 휘젓기때 아난타가 뽑은 만다라 산을 바다로 옮기는 일을 하였다.

라마야나 이야기중 랑카 섬 전투 중의 이야기에도 가루다가 나타난다. 아수라 라바나의 아들 인드라지트가 휘두른 뱀 창(나가파사, Nagapasha)으로 인해서 라마와 락슈마나는 온 몸이 뱀으로 꽁꽁 묶이고는 기절해 버린다. 정신을 차린 라마가 죽을 것 같다면서 원숭이 부대에게 후퇴할 것을 권한다. 이에 동맹군인 원숭이들이 놀라면서 군의 사기도 떨어진다. 뱀 창에 묶인 라마를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가루다가 내려왔다. 독수리인 가루다와 뱀은 천적이었다. 가루다는 라마와 락슈마나의 뱀들을 쫓아내어 상처도 치료해주고, 라마가 이 전쟁에서 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려준다.

가루다는 현재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문장인 인도네시아 국장,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회사의 명칭에 사용하고 있다.

쁘라삿 끄라반 북쪽 탑

쁘라삿 끄라반 북쪽 탑

쁘라삿 끄라반 북쪽 탑이 복원을 끝마치고 공개되었다. 중앙 성소탑과 달리 양쪽 벽돌 위에 수문장(드바라팔라, Dvarapala) 조각이 없다.

쁘라삿 끄라반 북쪽 탑

쁘라삿 끄라반 북쪽 탑으로 들어가면 정면(서쪽)에 비슈누의 아내인 락슈미가 서 있고, 그 주위에서 신들이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있다.

락슈미와 삼지창

북쪽 탑 왼쪽(남쪽) 부조에는 비슈누의 아내인 락슈미가 시바 신의 삼지창과 비슈누 신의 원반을 들고 있다. 락슈미가 시바와 비슈누의 양면성을 초월하였다는 것을 상징화하고 있다.

락슈미 부조 훼손

북쪽 탑 오른쪽(북쪽) 부조의 경우에는 훼손이 심하여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그 외 남쪽 탑 동쪽 출입구 린텔에 가루다를 타고 원반과 소라를 들고 있는 비슈누 신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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